바다 깊은 곳, 인간의 손길이 닿기 힘든 심해부터 도시의 강가까지 물고기들의 삶은 치열한 생존의 연속이다. 최근 뉴질랜드에서는 독특한 외모로 사랑받는 심해어가 화제가 된 반면, 지구 반대편 캘리포니아에서는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멸종 위기에 처한 고대 어종의 사투가 이어지고 있다. 전혀 다른 환경에 놓인 이 두 물고기의 사례는 자연의 신비로운 적응 능력과 인간이 생태계에 미치는 명암을 동시에 보여준다.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물고기’의 과학적 생존 전략
지난 3월 16일, 뉴질랜드에서는 이색적인 투표 결과가 발표되었다. 바로 ‘블롭피시(Blobfish)’가 올해의 물고기로 선정된 것이다. 블롭피시는 젤리처럼 흘러내리는 듯한 외모 탓에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동물’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지만, 대중은 오히려 이 기묘한 외형에 매료되었다. 하지만 블롭피시의 독특한 외모 뒤에는 심해라는 극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정교한 생존 본능이 숨겨져 있다.
블롭피시는 수심 1,000m 아래의 깊은 바다에 서식한다. 이곳은 수압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한데, 손톱 위에 약 100kg의 무게추를 올려놓은 것과 맞먹는 압력이 작용한다. 이러한 극한의 수압을 견디기 위해 블롭피시는 근육 대신 젤리처럼 물컹한 피부 조직을 갖게 되었다. 이 유연한 피부는 수압에 따라 자유자재로 수축과 이완이 가능하여 몸을 보호한다.
또한, 이 젤리 같은 몸체는 ‘부력’을 얻는 데 탁월하다. 심해에서는 먹이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에너지를 최대한 아껴야 하는데, 블롭피시는 부력을 이용해 힘을 들이지 않고 물속을 떠다니며 헤엄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보는 ‘못생긴’ 블롭피시의 모습은 사실 뭍으로 끌어올려졌을 때 강력한 수압이 사라지면서 몸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상태다. 즉, 심해에서는 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한 효율적인 신체를 가진 생명체인 셈이다.
캐비아를 노리는 밀렵꾼들과 철갑상어의 위기
블롭피시가 자연의 압력을 견디며 진화해 온 것과 달리, 캘리포니아의 철갑상어는 인간이 가하는 압력에 신음하고 있다. 2022년, 캘리포니아 어류야생동물국(CDFW)의 감시관들은 새크라멘토-샌호아킨강 삼각주의 인기 낚시터인 클리프턴 코트 포베이(Clifton Court Forebay)로 긴급 출동했다. 한 밀렵꾼이 녹색 철갑상어(Green Sturgeon)를 불법 포획하여 자신의 SUV 차량에 실었다는 제보가 접수되었기 때문이다.
감시관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165cm에 달하는 거대한 철갑상어는 차량 뒷좌석에서 거의 숨이 끊어질 듯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감시관들은 즉시 밀렵꾼을 적발하고, 사경을 헤매는 철갑상어를 살리기 위해 90분간 사투를 벌였다. 그들은 물속에 쭈그리고 앉아 물고기를 앞뒤로 흔들며 아가미에 산소를 공급했다. 마치 물고기가 헤엄치는 듯한 동작을 반복한 끝에 철갑상어는 기력을 되찾고 유유히 강으로 돌아갔다.
이 사건은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철갑상어의 알, 즉 ‘캐비아’가 고가에 거래되면서 이를 노리는 밀렵이 기승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의 흰 철갑상어(White Sturgeon)에서 나오는 캐비아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유라시아산 벨루가 캐비아에 비견될 정도로 최상급 품질을 자랑한다. 이 때문에 캘리포니아주는 1954년부터 상업적인 철갑상어 낚시를 금지하고 야생 철갑상어와 그 알의 포획 및 판매를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조직화되는 범죄와 생태계의 적신호
철갑상어 밀렵은 단순한 개인의 일탈을 넘어 조직적인 범죄로 진화하고 있다. 언론에서 ‘코스타 메사의 캐비아 왕(Caviar Kings of Costa Mesa)’이라 불린 사건이 대표적이다. 2021년, 당국은 18개월간의 추적 끝에 8명으로 구성된 대규모 밀렵 조직을 일망타진했다. 이들은 어린 연어를 미끼로 사용하여 철갑상어를 불법 포획하고, 알을 캐비아로 가공해 암시장에 유통하려 한 혐의를 받았다.
검거 당시 현장에서는 일련번호가 없는 일명 ‘유령 총(ghost gun)’과 AR-15 소총 등 불법 화기 5정, 453kg이 넘는 대마초, 그리고 위조지폐를 포함한 5만 7천 달러 상당의 현금이 발견되었다. 이는 밀렵이 마약 거래나 무기 소지 등 다른 강력 범죄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2013년에는 단 열흘 만에 18마리의 철갑상어를 밀렵하고 14kg에 달하는 알을 채취하려던 일당이 체포되기도 했다.
현재 전 세계 철갑상어 종의 85%가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인디애나폴리스 동물원의 모니카 뵘(Monika Böhm) 담수 보존 코디네이터는 “철갑상어는 지구상에서 가장 위협받는 종 중 하나”라며 그 심각성을 경고했다. 샌프란시스코 베이키퍼(San Francisco Baykeeper)의 과학 이사 존 로젠필드(Jon Rosenfield)는 밀렵뿐만 아니라 댐 건설로 인한 수로 차단, 유해 조류 번성, 남획 등 복합적인 요인이 이 고대 어종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고 지적한다.
심해의 블롭피시가 젤리 같은 피부로 자연의 혹독함을 이겨내는 동안, 수억 년을 살아온 철갑상어는 인간의 끝없는 탐욕 앞에서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우리가 이들의 생태에 관심을 가지고 보호하지 않는다면, 미래 세대는 이 신비로운 생명체들을 오직 박물관의 기록으로만 접하게 될지도 모른다.